뜻박의 세계
ㅡ 박지웅
화장은 제 얼굴에 정성껏 편지를 쓰는 일
화장하는 여자를 곁눈질하다 손거울에서 눈이 마주쳤다 미처
빠져나올 틈도 없이 갇힌 내 얼굴에 파우더를 두드린다 얼굴이
뜨지 않게 거울에 꼼꼼하게 펴바르는 여자는 잔잔하다
어떤 타계의 탁자에 백자처럼 놓여 있는 머리, 어쩌면 거울에
서 나는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비껴간 당신처럼 속눈썹에 앉은 글씨들
은 읽을 수 없다 다만 어떤 글씨에는 기차소리가 들린다 나무들
사이로 휘파람처럼 사라지는 기차
여자가 정성껏 입술을 옮기고 있다
내 입에 바른 입술을 붙이고 몇 번 다물어 맞추더니 거울을 닫
아버린다 내 얼굴을 가방에 챙겨넣고 경쾌하게 일어난다
거울은 얼굴에 내리는 낯선 역
나는 그 역명을 끝내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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