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먼 곳
ㅡ김정수
언젠가 와본 것 같은 여긴 어디일까요
소음으로 걸어가던 철길이 둘로 갈라져 고양이의 눈을 낳았어요 저 야옹한 눈빛은 또 어느 행성을 떠돌다 돌아온 걸까요
침묵을 파고들던 금속의 속도로
바퀴에서 튄 돌이 강물로 뛰어들어요
오후의 익사는
철새의 페허가 아닐까요 아무리 빨리 와봐야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한 번도 물 위에 떠본 적 없는 돌들은
얼마나 물살을 괴롭혔으면
몸이 둥글어졌을까요 잘 구르는 아부의
가슴을 치고 있을까요
막 터널을 빠져나와 눈이 부신 기차에 올라타 삶은
달걀을 까먹어요
산울림의 빨간 풍선이 유리창에 거미줄처럼 붙어 따라와요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않아요
그렇게 망가진 인연이 가족뿐일까요
상처는 빨강일까요 파랑을 닮은
수심일까요 망설임은 왜 추한 뒷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이 자리도 언젠가 앉아본 것 같아요
바다가 먼저 앉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축축한 의자는 슬픔 대신 무엇을 먹을까요
바다 반대 방향으로 잠든 산의
깊이를 깨워
언뜻언뜻 불빛을 키워요 당신을
만나려나 봐요 이상하게 귓속에서 파도소리가 들려요
담장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으면 꿈속으로 기차가 지나갈까요
잠에서 깨면 비밀처럼 집마다 문이 사라졌어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겨울 산중으로 떠났어요
떠날 수 없는 별들은 다 늑대가 되었고요
당신의 엄마처럼 자꾸 거짓말이 늘어나네요
이 도시는 정말 너무 빨리 달려요
바람이 불지 않아
신호등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당신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유서를 쓸 것 같아 고양이 발톱처럼 잠이 들었어요
난 너무 먼 곳까지 달려왔네요
난 여기가 아니라 인연에 속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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