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ㅡ이서화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글귀를 읽을 때마다
반드시 도달해야 할 그 어떤 곳이 있을 것 같다
그 비로소는 어떤 곳이며 어느 정도의 거리인가
비로소까지 도달하려면
어떤 일과 현상, 말미암을 지나고
또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할 것인가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이
저의 한계를 놓아버린 그곳
싱거운 개울이 기어이 만나고야 마는
짠물의 그 어리둥절한 곳일까
비로소는 지도도 없고
물어물어 갈 수도 없는 그런 방향 같은 곳일까
우리는 흘러가는 중이어서
알고 보면 모두 비로소,
그곳 비로소에 이미 와 있거나
무심히 지나쳤던 봄꽃,
그 봄꽃이 자라 한 알의 사과 속 벌레가 되고
풀숲에 버린 한 알의 사과는 아니었을까
비로소 사람을 거치거나
사람을 잃거나 했던
그 비로소를 만날 때마다 들었던
아득함의 위안을
또 떠올리는 것이다
벌레가 살아서 내게 기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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