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비로소 / 이서화

주선화 2022. 1. 11. 10:38

비로소

 

ㅡ이서화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글귀를 읽을 때마다

반드시 도달해야 할 그 어떤 곳이 있을 것 같다

그 비로소는 어떤 곳이며 어느 정도의 거리인가

비로소까지 도달하려면

어떤 일과 현상, 말미암을 지나고

또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할 것인가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이

저의 한계를 놓아버린 그곳

싱거운 개울이 기어이 만나고야 마는

짠물의 그 어리둥절한 곳일까

비로소는 지도도 없고

물어물어 갈 수도 없는 그런 방향 같은 곳일까

우리는 흘러가는 중이어서

알고 보면 모두 비로소,

그곳 비로소에 이미 와 있거나

무심히 지나쳤던 봄꽃,

그 봄꽃이 자라 한 알의 사과 속 벌레가 되고

풀숲에 버린 한 알의 사과는 아니었을까

비로소 사람을 거치거나

사람을 잃거나 했던

그 비로소를 만날 때마다 들었던

아득함의 위안을

또 떠올리는 것이다

벌레가 살아서 내게 기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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