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음악 없는 말 / 윤혜지

주선화 2022. 3. 28. 10:20

음악 없는 말*

 

ㅡ윤혜지

 

 

물의 가장자리를

걷는 사람들

 

곧 멸종되는 조개를 줍는다

 

혹은 죄악 혹은 돌과 나무조각들

 

모든 것은 제자리에 두고

탐색

작은 것들을 옮겨 담는다

 

모래를 밟고 서서 물을 바라보는 건 낡고 근사하다 첫눈에 대해 말하는 노인들 같다

계절이 시작되면 그들은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상하지, 오래된 사람들은 늘 처음을 말하고

 

조개 좁는 사람들 곁에 앉아 조개에 붙은 모래알을 털어냈다 해안가 침식이 심각합니다 너도나도 모래를 퍼가서요 멸종은 조개가 아니라 모래에게 도래한 것 같아요

 

저기

온갖 것을 묻힌 사람이 지나간다 지나갔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한다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 손을 넣는다

모래를 퍼내면 모래는 느리게 밀려간다 더 깊은 곳으로

 

평범한 것들이 마음에 닿았다 떨어지는 순간 

등 뒤의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사건을

 

잠깐 쥐었다 놓아도 쥔 감각을 놓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집에 가면

목이 긴 유리컵에 조개껍질이 한가득이다

그것을 관상하다, 같은 어려운 말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을 골라 따뜻한 국물 속에 넣고

죽은 것의

숨구멍끼리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야지 생각했지만 곧 잊혔고, 모두가 물가에 있었던 기억마저도 쓸려가고,

수심이 깊어져 이제 아무도 조개를 줍지 못할 곳까지 모래는 깊고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빈곳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그런 적이 있었지 하기도 전에 각자가 멸종되고

 

무너지는 것도 반복이라고

 

노인들도 죽고 이제 눈 이야기 해줄 사람도 없다 처음을 발음할 사람도

 

 

*필립 글래스의 동명의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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