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ㅡ도종환
당포 앞바다는 나전칠기 빛이었다 돌벅수 둘이 저물면서도 전복 껍데기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장승이지만 입술 오목하게 오므리고 웃는 눈자위가 순해서 좋았다.
섬 사이로 섬이 있었다 굳이 외롭다고 말하는 섬은 없었다 금이 가지 않은 바위는 없었다 그렇다고 상처를 특별히 내세우는 벼랑도 없었다 전란도 있고 함정도 있고 곡절 많은 날들도 있었지만 그게 세월이었다.
윤이상도 이중섭도 그걸 보고 갔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았을 저녁바다를 나도 망연히 바라본다 통영에는 갯벌이 없다 바위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많이 움직여야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건 어류들만이 아니었다.
통영에 다녀온 뒤로는 해수욕장이 늘씬한 해안보다 고깃배가 달각달각 모여 있는 바닷가 마을이 좋았다 밀려오는 바다 밀려가는 세월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누워있는 섬들이 나는 좋았다.
감상
ㅡ박준(시인)
통영의 풍경을 넓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는 통영을 사랑한 윤이상과 이중섭이 등장하는데요. 통영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입니다. 백석 시인과 박경리 소설가도 떠오르고요. 아울러 통영에는 제가 미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공예가들이 살았습니다. 갓장이가 만드는 갓, 나전장의 자개장롱, 두석장의 문갑, 소목장의 소반 등등. 통영에서 나고 자란 박경리 선생은 통영의 수공업이 발달한 까닭은 이렇게 설명해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닷가에 나가서 생선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아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다 빛이 고운 탓이었는지 모른다. 노오란 유자가 무르익고 타는 듯 붉은 동백꽃이 피는 청명한 기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 이 글을 읽고 저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가 눈으로 담아낸 아름다운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꽃피고 꽃 지는 이 봄날, 우리는 더 부지런히 주위를 둘러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홍강 / 이하석 감상 / 나민애 (0) | 2022.05.05 |
---|---|
뒤편 / 천양희 감상 / 나민애 (0) | 2022.04.28 |
곡우 / 정우영 감상 / 김정수 (1) | 2022.04.20 |
단맛에 빠지다 / 오서윤 감상 / 김부회(시인) (0) | 2022.04.13 |
봄날 / 송창우 감상 / 성윤석 (0) | 2022.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