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주선화 2022. 5. 4. 15:48

일찌기 나는

 

ㅡ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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