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는 산책을 좋아한다
ㅡ김기택
산책로 여기저기에 코를 들이대다가
수상한 구석과 풍부한 그늘을 콧구멍으로 낱낱이 핥다가
팔이 잡아끄는 목줄을 거스르며
냄새 속의 냄새 속의 냄새 속으로 빠져들다가
애기야, 어서 가자, 안 가면 코만 떼어놓고 간다
엄마가 사정해도 꿈적도 하지 않고 코만 박고 있다가
냄새에 붙들려 코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목줄이 아무리 세게 목을 잡아당겨도
냄새에 깊이 박힌 코는 뽑혀 나오지 않는다
콧구멍으로 이어진 모든 길을 거칠게 휘젖는 냄새에
코가 꿰어 끌려들어 간다
수천수만의 코와 꼬리가 뛰어다닐 것 같은 곳으로
이름과 표정과 살아온 내력과 가계와 전생까지
한 냄새로 다 쿠시하는 코들이 있을 것 같은 곳으로
냄새를 향해 뻗어 내려간 뿌리들의 끝이 보일 것 같은 곳으로
네 발바닥 질질 끌리며 끌려들어 간다
냄새는 점점 커지고 사나워진다
좁은 틈으로 수축했다가 동굴처럼 늘어나는 기다란 구멍이
벌름거리는 콧구멍을 삼키고
콧구멍에 매달린 머리통과 몸통까지 다 삼켜버릴 기세다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몸통은 보이지 않고
남아 있는 꼬리만 풀잎 사이에서 살랑거리고 있다
도와주세요! 냄새에 물린 우리 애기 코 좀 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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