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지붕 위의 바다 / 정혜영

주선화 2022. 8. 17. 13:06

지붕 위의 바다

 

-정혜영

 

 

네모난 창문 네모난 뷰파인더, 그 방에 갇혀 있다 내 안에서 네모난 나무가 자라난다

 

그런 게 어딨어, 왜, 네가 그걸 못 봐서 그렇지

 

느티나무 한 그루 뿌리를 드러내며 저녁으로 기울어진다

누가 여기 싹둑, 큰 톱을 들이댄 건지

 

저쪽은 어둠으로 물들어가길 기다리고

 

우리는 사랑일까

상처를 키우면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 멈춰 있다

 

손이 닿지 않는 허공에서 집을 짓는 새들

 

우린,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닿을 수 없는 비명에 닿으려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서성이고 있다

 

누군가 그어놓은 한 줄의 수평선

지붕 위의 바다는 한꺼번에 쏟아지려고 골똘하고 헐벗은 나무뿌리 사이로 지나가는 시간, 가파른 골목을 쏘다니다가

날카로운 휘파람으로 돌아온다

 

들리니, 보이니

 

수령을 알 수 없는 언덕,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느티나무

그래서 제 속을 보여주는 걸까

 

내가 보지 못한 언덕의 반쪽은 어디론가 날아가서 어느 산맥의 등뼈가 되었는지

수평선에 갇힌 흰 갈매기들, 모래밭에 묻힌 두 발을 가볍게 들어올린다

 

네모난 창문 너머 색색의 슬레이트 지붕들

주황은 날아가서 햇살이 되고 파랑은 멀어져서 쨍한 하늘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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