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몸에 비가 내리는 시 / 김륭

주선화 2022. 8. 16. 09:58

몸에 비가 내리는 시*

 

-김륭

 

 

비가 내리고

훌쩍 2년을 넘게 엄마는

요양병원에 누워 있고, 나는 물끄러미

창밖의 비를 아기 기저귀처럼 걷어 오는데

문득 아버지 기일이라도 생각났는지

조기 한 마리라도 사야겠다는 듯

엄마가 나를 올려다보는데

하늘보다 무서운 입이 긋는 마른 번개 같아서

들고 있던 비닐우산 슬그머니 내려놓고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는 장면

 

나는 또 봅니다

비는 내리고, 엄마는 누워 있고, 아이에게로 갑니다

비가 그치기 전에 출발하십시요 가다가

환승하지 마십시요 전생이 바뀌어도

절대 갈아타지 마십시요 사이다와 계란은 안 됩니다

조기나 도미 같은 생선은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둘러보실 수 있지만

도착 시간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빗속에서 있는 비처럼

아이에게 도착하면, 시작되는

술레잡기

 

요양병원에 누워 있던 엄마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잡고

나를 잡으러 쫓아올 때까지 가만히

나는 기다립니다 비는 내리고

엄마는 누워 있고

우산도 없이, 좀 있다 울어야 할

아이를 나는 내가 아닌 듯

봅니다

 

엄마, 걱정마요 이제

곧 울거예요

 

 

* '몸에 비가 내리는 시(A Poem That Rains on the Body)' 라고 불리는 <텍스터 레인(Text Rain)> 은 1999년 미국의 미디어아티스트카밀 우터백과 이스라엘 출신의 멀티미디어 예술가 로미 아키투브가 공동으로 제작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작품. 스크린 앞에서 관객들은 다양한 몸동작으로 반응하며 놀이하듯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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