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신미균
덜 구워진 어둠을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비 오는 유리창과 날짜 지난 신문을 갈아
찍어 먹는 소스를 만들고
으깬 하품을 동그랗게 말아
접시를 장식한다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는
팔걸이의자와
동그란 의자와
흔들의자를
식탁에 둘러앉힌다
잠시 후 동그란 의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구석으로 치운다
팔걸이의자도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방으로 옮긴다
흔들의자도 마음에 들지 않아
밖에 내다 놓는다
그런데 또 잠시 후
뭔가 허전한 것 같아 흔들의자를
동그란 의자를 팔걸이의자를 가져다
식탁에 둘러앉힌다
변덕을 부려도 투덜대지 않는 의자들 때문에
기분이 괜찮아진다
왼손엔 포크
오른손엔 나이프
어둠에 칼을 대자
육즙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오늘도 최대한 얇게 썰어 천천히 먹는다
점점 길게 늘어나기만 하는
어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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