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전언
-성영희
바닷가 바위 틈 폐타이어 하나 끼어있다
무늬도 잊은 채
무장하듯 온몸에 굴 껍데기 덮어쓰고
바위인 양 숨죽이고 있다
누군가 달려온 길의 흔적을 묻고 싶었던 건지
마지막 생을 다하여 뛰어든 건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하얀 패각들
마모된 몸을 의지해 핀 꽃이 쓰리다
제 살타는 냄새 역겨운 질주도
울컥울컥 멀미나는 비탈길도
돌멩이처럼 견뎠을
내 아버지 같은 동그라미
하필,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곳에 굴려와
몸소 수장되다니
파도타고 달려든 망둥이 한 마리
제 집인 줄 알고 지느러미 접는다
한 숨 한 숨
물 호흡으로 깨어나는 꽃무리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배꼽 들썩인다
죽어도 다시 서는
저 장엄한 몸의 전언
물의 끝
물의 끝에서 시간은 시작된다
세상의 물줄기 그 끝에 매달려 있는 동굴의 시간
한 방울 물이 빚어낸 무수한 파편들 뭉쳐 있다
지금까지의 무한 초침이
캄캄한 동굴 안을 순筍의 왕국으로 만들고 있다
제 몸을 끊고 울리는 몰입으로
또 하나의 뿔을 만드는 완고한 단절
저 단파短波의 소리들이
웅숭 깊은 받침 하나를 만들고 있다
좌대를 만들고 그 좌대 위에서 물이 자란다
끊어지고 부서지는 소리들이 키운
단단한 기둥,
물의 미라가 동굴에 순장되어 있다
뾰족한 짐승의 울음 소리가
동그란 파장으로 번지는 동굴 안
한 줄기 빛이 물방울에 걸렸다
물의 끝에서 시간이 다 빠져 버리면
세상은 잔물결 하나 없는 대양이 될까
시간이 물로 돌아가는 회귀의 방울들
일 센티 종유석에 천 년이 실고 있다
둥근 힘
배고픈 것들은 밤에 눈이 부푼다 비루한 수염에
매달린 어린 새끼들, 어미 고양이의 둥근 후각에
부패한 골목의 냄새가 달라붙는다
시곗바늘을 묶어 놓고 놀던 아이들도 밥그릇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어둑한 밥상이어도 좋고
맨바닥이어도 좋은 밥 한 그릇, 맨밥의 간을
맞추는 것도 그때 배운다
밥 주는 장소를 옮기자 어미는 갓 낳은 새끼들을
밥그릇 근처로 물어 나른다 어느 안락보다 자력이
센 밥그릇의 힘
둥근 젖을 먹는 새끼들이 둥근 잠을 잔다 야웅,
지켜보는 어미 고양이 제 앞발을 핥으면서 무심한
척하는 등이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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