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봄
-하두자
폭설의 감옥을 지나온 우리는 봄이 가도 좋아
무채색 물비늘 흩뿌리며
퐁,퐁, 수놓으며
봄을 할퀴는 긴 손톱의
빗소리에 젖은 지붕까지도 밀어 넣으면서
목련 잎에 어린 빗방울들이
동굴의 겨울에서 터널의 봄으로
뭉텅 뭉텅 거품을 무는, 아무에게나 열어주는
연두로
겨울과 봄을 헝클어대는 햇살이
둥근 혀를 말아서 진실을 말한다는 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귀 기울여봐
두서없이 피는 꽃들이
밥알처럼 터지는 사이
너무 쓸쓸해서 알쏭달쏭한
상투적인
봄, 봄비
철없이 피었다가 넘어지는
붉게 타오를 밤까지
경배하듯 자지러지게 어깨를 두드리는
화창하지 않은 봄,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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