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섬 / 이근일

주선화 2023. 4. 26. 10:31

 

-이근일

 

 

섬에 고립되지 않으려면

물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네 마음을 훔치려면

그 순간을 밝은색으로 물들여야 한다

 

한 사람을 가둔 한 사람이 있었다

 

같은 자리를 맴돌던 그 집에선

게가 문 거품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썩은 몸으로 수백 년 버티던 나무가

끝내 기우는 순간은 언제인가

 

낮에는 환희가

밤에는 우울이 파도치는 너의 바다

 

그 어디쯤에서 흔들리는 섬

 

나는 오늘도 바다에 배를 띄우고

그 섬을 향해 가는 것이다

높고 낮은 파도에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뱀이 허물을 벗듯

얼굴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언제인가

 

빛을 머금은 그 얼굴이 

다른 얼굴을 밝게 물들이는 순간은

 

 

 

ㅡ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