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별장
-신성희
오전이 끝나가고
우리는 조용한 주택가를 걷고 있다
함께 걷는 게 얼마 만이야?
여름이면 이곳이 그리웠어
나는 말하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너는
이제 거의 다 끝나간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네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아서
너를 자꾸 바라보게 된다
길거리 여기저기 개똥이 흩어져 있다
우리는 개똥을 피해서 걷는다
시市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수돗물을 틀어 흘려보내지만
개똥을 늘 그대로 라고 너는 말한다
계속 걸어도 괜찮겠어?
발 아프지 않아?
대답 대신 너는
여름이면 왜 콧잔등에만 땀이 나는지 모르겠어
짧은 반바지를 찢어버리고 싶어지는 게 이곳 날씨야
여름이 지루해
그러면서 너는 이제 거의 다 끝나간다고 한다
그런 네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아
너를 자꾸 바라보게 된다
너는 하얀 돌 하나를 손에 쥐고 있다
문방구를 지나고
빵집에서 흘러나오는 빵 냄새를 맡으며
검은 양복 상의가 걸린 양복점을 지나 우리는 걸어간다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고
몇 년 동안 너는 무섭게 늙어버린 것 같다
너의 손 안에서 돌이 꿈틀거린다.
벗어나려고
돌과 나에게 들으라고
너는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제발 가만히 있어
이제 다 끝나가
알 수 없는 여름이
이상한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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