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의 여름이 지나가고
-손현숙
비 오는 날 빨간 구두를 신는다
골목을 기웃거리는데
창문마다 작은 쇠종을 매달았다
소리 속에서 소리가 이어졌다, 끊어졌다,
세상에서 이름을 찾다가
세상 밖으로 미끄러진 아이는
어디 가서 저를 찾아와야 하나
굽이 닳아서 발목까지 사라지는 꿈,
따뜻하고 말랑한 구름을 입에 물고
이 없는 잇몸으로 오물거리는,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갈까
뱃바닥으로 기어서 달빛까지
닿으면 길이 끝나는 걸까
누가 나를 부르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팔목을 저으면서 따라오는
빨간 구두는 언젠가 만났던 얼굴이다
오늘은 종일 비가 오고
그 비를 다 걷고 나서야
쇠종처럼 흔들리는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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