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계속 틀어놓으세요
-박소란
상수도 공사 후 수돗물에 이물질이 섞여 나온다
민원을 넣는다
살 수가 없어요 이대로 도무지,
흙이 나오고 쇳조각이 나온다
누가 저질렀는지 모를 알들이 쏟아져 나온다
알은 부서지기도 한다
알에서 뭔가 태어나기도 한다 살 수가 없어요 살 수가, 울먹이면서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의 요령을 알 수 없다
사랑도 나오고 결국 사랑은 아니었던 거지, 도 나오고
그 물에 얼굴을 씻고 머리칼을 헹군다
밥을 말아 먹는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고 키가 자라는데
점점 흐려진다 나는 차가워진다
물 흐르듯 흘러
어디든 당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든 지체 없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눈을 감고
눈을 감고
잠을 한 컵 떠 들면 미세한 꿈들이 순순히 가라앉고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아침을 깨우는 드릴처럼 말끔한 수도사업소의 안내문처럼
보란 듯 파헤쳐진 골목을 유유히 걸어갔다 걸어온다
번쩍이는 파이프가 가리키는 하나의 방향으로
집은 여전하고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해결하지 않는다
철썩거리며 흘러가는 매 순간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이 둥둥 떠 있다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 별장 / 신성희 (0) | 2023.06.10 |
---|---|
빗소리가 비를 묶어놓듯이 / 김륭 (0) | 2023.06.08 |
반건조 살구 / 안희연 (0) | 2023.06.02 |
지상에서 영원으로 / 노향림 (0) | 2023.05.31 |
당신 이야기잖아요 모르시겠어요? / 김륭 (0) | 2023.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