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의 방
-김은상
그녀의 눈망울에 달이 차오르고 있었다.
저녁이 환해질수록
점점 작아지던 그녀의 방.
목련이 피어나고 있었다.
백태 안쪽 가만히 귀를 대보면
눈물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보다 야트막하게
대문쪽으로 머리를 수그리고
코흘리게 아이들을 품고 있었다.
수레를 끄는 그녀의 등이 낡은
지붕으로 휘어져 가는 사이
아이들은 얼굴보다 큰 뻥튀기를 깨물며
흙벽 모서리에 난 구멍을 긁었다.
술에 취해 밤의 목덜미에 칼끝을 대고
새벽을 엎지르는 아비를 긁는 것인지.
그런 악천후를 피해 돌아오지 않는
이역의 어미를 긁는 것인지.
철없이 벽은 긁을수록 환해져,
커져가는 햇빛과 엉켜
킥킥대며 방바닥을 뒹굴었다.
봄을 향한 나무의 비명이 꽃이라면
고통은 적멸에 가닿는 생의 환호일까.
수북이 쌓인 폐지 속에 숨었다가
세상보다 아득한 온기에 몸을 말고
스르르···,
눈을 감아버린
어린 고양이의 잠.
곪은 달은 아물었다
덧나기를 반복하며
목련나무 가지 위에서 부풀었다.
혹 월식이 그리워지는 그믐이면
그녀의 명치끝에 고인 울음을
마른 밥그릇 떨어뜨려 설거지했다.
닦을수록 그늘이 깊어지는 꽃의 이명,
화들짝 달무리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무도 깨지 않은 목련의 밀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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