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카페
-박여름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사는 대저동
비행기는 낮게 뜨고 낮게 가라앉는다
어둠을 몰고 오는 풀벌레는 암청색을 덧칠한다
둥근 소리를 밟으며 공장 사람들, 집으로 돌아간다
지붕이 낮거나, 더운 온기가 방 안 가득한 사람들은
신발에 달빛 묻힌 채 하나둘 카페로 모여든다
주홍서나물꽃이 주인 없는 담장에 군락을 이룬다
꽃이 모로코에서 따라왔다며 수줍게 웃는 모하메르
여자친구 사라를 닮았다고 볼이 꽃빛으로 물든다
고향 풍경을 속보로 전한다
거대한 6.8 흔들림이 마음을 무너뜨린다
'지진이 나던 밤, 식탁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던 하미드 씨 가족,
부엌에 과도를 가지러 갔던 여덟 살 아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속보에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족들
달빛 속에 손 흔들며 다가왔다 사라졌다 반복한다
냉커피 얼음이 다 녹아도 컵 안에 담겨있다
핏빛 십자가 보다 더 핏빛인 24시 달빛카페에서
여진이 이어진다
눈물이 많은 사람들
달빛에 발목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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