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날개 환상통 / 김혜순 (한국 최초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주선화 2024. 3. 28. 11:44

날개 환상통 (번역 최돈미 시인 )

 

-김혜순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늘 같은 꿈을 꿉니다

얼굴은 사랑이고

팔을 펼치면 새

말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지금은 식사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올립니다

걸어가면서 피를 쌉니다

 

그 이름, 새는

복부에 창이 박힌 저 새는

모래의 날개를 가졌나?

바람에 쫓겨 가는 저 새는

 

저 좁은 어깨

노숙의 새는

유리에 맺혔다 사라집니다

 

사실은 겨드랑이가 푸드덕거려 걷습니다

커다란 날개가 부끄러워 걷습니다

세 든 집이 몸보다 작아서 걷습니다

 

비가 오면 내 젖은 두 손이 무한대 무한대

 

죽으려고 몸을 숨기려 가던 저 새가

나를 돌아보는 순간

여기는 서울인데

여기는 숨을 곳이 없는데

 

제발 나를 떠밀어주세요

 

쓸쓸한 눈빛처럼

공중을 헤매는 새에게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들어오면 때리겠다고

제발 떠벌리지 마세요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

공중에 있답니다

 

사실 이 소리는 빗소리가 아닙니다

내 하이힐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오늘 밤 나는

이 화장실밖에는 숨을 곳이 없어요

물이 나오는 곳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주는 곳

나는 여기서 애도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타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를 떠밉니다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