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고요한 세상의 쓸쓸함은 물밑 한 뼘 어디쯤일까 / 금시아

주선화 2024. 10. 7. 10:34

고요한 세상의 쓸쓸함은 물밑 한 뼘 어디쯤일까

 

- 금시아

 

 

한여름이 탐욕스레 그림자를 잘라먹고 있었다

그날처럼 장대비가 내렸다

 

기척을 통과한 사간들

폐쇄된 나루에 주저앉아 있고

물과 뭍에서 나는 모든 것들의 적막

파닥파닥 격렬을 핥기 시작한다

 

한여름이 햇살을 변호하고

그림자가 그림자의 풍문을 위로하면

열 길 넘는 금기들

장대비처럼 세상을 두들기며 깨어날까

 

고요한 세상의 쓸쓸함은 물밑 한 뼘 어디쯤일까

왜 휘몰아치는 격렬마저 쓸쓸한 것일까

 

조용히 상을 물리면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가득해

 

서늘하거나 다정한 그리움 하나,

소용돌이치며 자정을 돌아나간다

 

간혹, 이런 장대비의 시간은

그림자 떠난 어떤 기척의 쓸쓸한 자서전이다

 

 

 

하루, 그리고 도꼬마리 씨

 

 

그대의 사주는 역마살입니까

흩어지는 여행은 늘 성급합니다

 

멀리 갈 요량으로 아무 다리나 잡았던가요

풀숲을 탈옥할 각오쯤은 물론 있었겠지요

 

온몸에 도꼬마리 붙어 왔던 날, 운명은 날갯짓이었나요

 

깜짝 놀라 뒤돌아가는 절망에도, 옆길로 피해 달아나는 불빛에도

어김없이 달라붙길 좋아하던 그대의 막내처럼 붙임성이 좋았지요

빚쟁이들의 까칠한 추심같이 좀체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

불행을 떼어내다 보니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한 생生일뿐이었군요

 

솜털 같은 촉은 이미 던져진 미늘이었나요

새장 속 새는 분홍이었던가요

 

담쟁이 주파수 쪽으로 

입술을 깨물고 글썽이는 도꼬마리의 여름

범람해서 흰 눈 속에서조차 번식합니다

 

속내 궁금한 달의 주기처럼

어떤 천적도 없어 흩어지고 마는 빛과 어둠

하루, 그리고 도꼬마리 씨

 

그대는 아직도 위험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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