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구멍 (외 1편)
- 김안녕
비타민 알약 하나
목에 걸려 지구본처럼 내려가지 않을 때
겨우 알약 하나,
오대양 육대주가 내 몸 안에 있네
한 짝만 남은 양말은 어쩌면 좋아
레몬 맛을 고를까 딸기를 고를까 그런 게
인생이면 얼마나 좋아?
네이버 국어사전에 배냇저고리를 검색하다가
배냇불행이란 말을 알게 된 날
타고난 불행이라니 불행을 타고난다니
배냇불행이라는 말 때문에 하루가 넘어가지 않는다
바질 잎에 난 구멍을 보고 그게 꼭 나라는 생각
시는 당초 잘못 디딘 맨홀이라는 생각
희망을 버리면 좋은 일이 생긴단다*
그런 말을 뱉으며 동시에
기도하는 습관
아픈 데로 자꾸 손이 가서
머리어깨무릎발 머리어깨무릎발 열심히 주무른다
그런 날엔 꼭두새벽부터 말매미가
울더라
* 영화 < 자기 앞의 생 >에서 로사의 대사.
돌꽃
유방에 석회가 짙게 끼어 양성 종양인지 아닌지 확인이 어렵다는 말
나는 점점 돌덩이가 되어 간다
때로는 그게 세상 편하게 느껴지기도,
살다 보면
극적인 순간이 온다 믿었지만
이런 그림은 아니었는데
무슨 혹성 탈출도 아니고
맘모톰*은
굴삭기처럼 유방을 파 들어간다
병원 뜨락엔 작약이 피는데
나는 잔뜩 약이 오른다
둥글고 예쁜 것들 아무리 떠올려봐도
쇳소리 잦아들지 않아
피 묻은 붕대
옜다 꽃이다,
창밖으로 내던진다
* 유방의 양성 병변을 절제하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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