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의 날들
- 이승애
흩어진 뼈를 일으키는 건 습기입니다 수억 년 전 물에서 태어나
기댈 곳 찾아 뭍으로 온 우리는 태초의 냄새를 기억합니다
음지는 우리의 몫이지요
음습한 골목길, 물에 젖은 하루가 절뚝이며 지나갑니다
언젠가 불렀던 곡조는 밟히고 또 밟혀도 살아납니다 노래가 아닌
그 한 소절을 흘리며 골목 끄트머리로 사라질 때 멀리서 바라본 혼
자만의 은밀한 기억을 녹이면 어둡고 축축한 그늘 맛이 납니다
막막함에도 내성이 생기는 걸까요
빛은 어차피 우리의 핏줄이 아니기에
더는 숨길 수 없는 조짐이 파랗게 피어오르면 하나가 됩니다
눅눅하고 미끄러운 예감으로 같은 종족을 알아봅니다
세상에서 소외된 분노는, 짓밟는 발목을 뿌리치거나 썩은 나무나
그늘진 바위를 덮기도 하지요 이때 우리의 피는 온통 뜨거운 녹색입니다
한 사내가 끊어진 노래를 기타 하나에 담아두고 뒷것이 되었지요
잎과 줄기 구분 없이 바닥이나 틈을 붙잡고 납작한 숨을 쉽니다 피가
마르면, 끝내 사라질지라도
*심사위원 <도종환, 성낙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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