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발이 하는 말 / 김욱진

주선화 2025. 5. 5. 08:20

발이 하는 말

 

-김욱진

 

 

아, 어디쯤일까

길을 걷다 폐휴지 한 리어카 싣고

언덕길 오르는 맨발을 보았다, 나는

들었다, 발이 하는 말을

발가락은 바짝 오므리고 뒤꿈치는 쳐들고

그래도 뒤로 밀려 내려가거든

헛발질하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혓바닥 죽 빼물고 땅바닥 내려다봐

써레질하는 소처럼

발바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바닥과 바닥은 통하는 법이야

그래, 맞아

둘이 하나된 바닥은 바닥 아닌 바닥이지

손바닥처럼 그냥 가닿는 대로

가닿은 그곳이 바닥이니까

여기, 지금, 나는

바닥 아닌 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발

바닥을 보았고

바닥 없는 바닥

아슬아슬 가닿은 발

바닥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소리 들었다

비 오듯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사이로

리어카 바퀴가 미끄러져 내려갈 적마다

발바닥은 시험에 들었다

땀 한 방울 닿았을 뿐인데

그 바닥은 난생처음 가닿은 바닥

발가락과 발뒤꿈치는 땀방울 밀고 당기며

발바닥이 바닥에 닿았다고

어느 바닥인지 알 수 없는 그 바닥

간신히 가닿고 보니

바닥이라는 바닥 기운 다 끌어당기고 가는 저 발

바닥은 바다보다 깊고 넓적하다

 

 

*김욱진 시집 <어느 노송의 주례 말씀>

- 시인동네 시인선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