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게임*
-고영민
쌓여 있는 시집에서
한 권 시집을 조심조심 빼내기
레바논 감정 읽기
다 읽고 맨 위에 올려놓기
아무렇지도 않게 밑돌 빼서 윗돌 고이기
야생 사과를
꿈속에서 우는 사람 빼내기
중얼거리는 사람 빼내기
비버리힐스의 포로노 배우와 유령들 빼내기
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잘 못하고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 빼내기
거울 속의 천사
단검을
낫이라는 칼 빼내기
들춰보지 않은 시집들은 나날이 쌓이고
먼지가 뽀얗게 앉고
기러기 빼내기
아, 입 없는 것들 빼내기
눈부신 꽝을
음악집과 초록의 어두운 부분 빼내기
나는 나의 방식으로 수다스럽고
두 편으로 나누어 혼자 즐기는
이 게임은 아슬아슬 좀처럼 끝나지 않고
치킨이 배달되고, 콜라는 서비스
붉은 표지의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고
쌓인 시집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질 때까지
검은 눈, 자작나무 빼내기
나비 가면 빼내기
*직육면체의 조각들을 쌓아놓고 쓰러질 때까지 한 손으로 한 조각을 빼며,
맨 위에 다시 쌓아 올리는 보드게임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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