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젠가게임*/ 고영민

주선화 2025. 5. 2. 07:56

젠가게임*

 

-고영민

 

 

쌓여 있는 시집에서

한 권 시집을 조심조심 빼내기

레바논 감정 읽기

다 읽고 맨 위에 올려놓기

아무렇지도 않게 밑돌 빼서 윗돌 고이기

야생 사과를

꿈속에서 우는 사람 빼내기

중얼거리는 사람 빼내기

비버리힐스의 포로노 배우와 유령들 빼내기

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잘 못하고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 빼내기

거울 속의 천사

단검을

낫이라는 칼 빼내기

들춰보지 않은 시집들은 나날이 쌓이고

먼지가 뽀얗게 앉고

기러기 빼내기

아, 입 없는 것들 빼내기

눈부신 꽝을

음악집과 초록의 어두운 부분 빼내기

나는 나의 방식으로 수다스럽고

두 편으로 나누어 혼자 즐기는

이 게임은 아슬아슬 좀처럼 끝나지 않고

치킨이 배달되고, 콜라는 서비스

붉은 표지의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고

쌓인 시집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질 때까지

검은 눈, 자작나무 빼내기

나비 가면 빼내기

 

 

*직육면체의 조각들을 쌓아놓고 쓰러질 때까지 한 손으로 한 조각을 빼며,

맨 위에 다시 쌓아 올리는 보드게임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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