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 강빛나

주선화 2025. 6. 27. 09:49

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 강빛나
 
 
여름을 닮아 속심이 든든한 그녀는 물돌이로
커가는 감자꽃을 좋아했다
5월 감자꽃을 생각하면 가난의 성장통이 쉽게 지나가고,
꽃이 피기 전에 유전을 자르면 실한 엉덩이처럼 꽃은
밭고랑을 꽉 채우고도 남았다
그녀는 꽃을 그대로 두면 웃자라 내성천의 보슬보슬한
감자 맛을 잃기 쉽다고 했지 인간의 생각이란 어쩌면
중심보다 중심을 살짝 비껴가는 부푼 꽃 색이 좋아서,
펼치면 조금 감추고 싶은 이력서처럼  백사장은 감자
꽃잎이어서, 그 속에 노란 들판을 꿈꾸기도 하지 복사
열에 꽃잎이 느슨해지면 통나무다리를 세워 공중에
오르고, 고무대야에 앉아 물미끄럼 타는 생각에 빠지
기도 하는데, 땅을 밀고 올라오는 바지랑대에 눈길이
닿는 그녀와 나는 닮은 곳이 없지만 
자른 감자 꽃대를 몇날며칠 식탁 위에 놓으면 
꽃잎은 뭉게구름 벙그러지듯이
땅 한 평 빌려주고 일수 놓는 걸음으로 장마가 오가는 사이,
감자는 그녀를 꼭 닮아 버릴 데 없이 야물었다 잘라야 할 때,
딱 자르면 속 썩을 일이 없는 걸까
항상 오른쪽에 가방을 메고 같은 자세로 살아가는 
그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틀 시간은 없어
자르는 일도 구름 타듯 하지
그녀가 장터에 감자를 팔고 온 밤은 배추, 열무 모종을 생각하지
서른다섯 시간으로 쪼갠 하루지만 늘어진
여름 물놀이에 발을 담그고,
가끔은 육지 속의 섬을 자처해 보는 것
정수리에서 이마로 향하는 땀방울을 짚어보는 일이지
 
 
ㅡ예천내성천문예현상공모 대상작.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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