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경전 - 양점순 나비는 비문을 새기듯 천천히 자수 병풍에 든다아주 먼 길이었다고 물그릇 물처럼 잔잔하다햇빛 아지랑이 속에서 처음처럼 날아오른 나비 한마리 침착하고 조용하게 모란꽃 속으로 모란꽃 따라 자라던 세상 사랑채 여인 도화의 웃음소리대청마루에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이모란 그늘 흩어지는 뒤뜰 흐드러지게 피는 웃음소리그녀가 갈아놓은 먹물과 웃음을 찍어 난을 치고나비를 그려 넣는 할아버지 상처를 감춘 꽃들이할머니 손끝에서 툭툭 핏빛으로 핀다어떤 날은 긴 꼬리 장끼와 까투리가 태어난다 어디서나 새는 태어나고 어디서나 날아가 버리곤 한다 모란이 핀다, 모란이 핀다 붉은 꽃잎을 따서 후하고 불어 보는 아이꽃잎은 빙빙 돌며 아랫집 지분 위로 날아간다그 집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한다 모란 꽃잎 불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