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 -성욱현 몸에 맞추어 옷을 만들던 시절은 지났다 우리는 만들어진 옷 속에 몸을 끼워 넣는다 입지도 않는 옷을 산 걸 후회했고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옷이 쏟아지다니, 이게 뭐니 창고에 갇힌 미싱은 소리 없이 울면서 혼자 돌아갔겠다 할머니가 늙어가는 소리처럼 소리 없이 할머니를 입는다 미싱을 배울 때가 좋았어 할머니는 사라질 것만 같은 쵸크 선을 따라서 엉킨 실을 풀며 매듭을 새기며 몸에 맞는 옷을 만들었겠다 미끈하고 곧게 선 재봉틀 위를 걸어가던 할머니는 두 발을 가지런히 하고 누워 계신다 열여덟 살 소녀가 누운 나무 관, 삐걱거린다 새 옷에서는 차가운 냄새가 난다 몸은 언제나 헌것이라 옷보다 따뜻한 것일까 치수를 재어 나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며 할머니는 오래된 치마처럼 낡아가며, 얇아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