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삽 / 정진규

주선화 2008. 1. 28. 11:42

삽 /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나는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어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앗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殮염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2007년>

 

 

* 시인은 언어의 맨살을 만진다. 말과의 상면과 말의 "한 줄금 소나가" 를

만나는 순간의 경이를 시인은 표현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경이가 사라지는 일은 슬픈 일이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혀를 대보고 생각을 만드는 이 날것의 감각에서

소위 맛이 사라지면 살맛이 가실 것이니 이 세상은 얼마나 깜깜한 절망이겠는가 이 세상을 다시 맞이하는 아침에는 당신도 '아, 세상이 맛있다"라고

말해보랴, 애초에 생에는 무력감이 없으므로,

 

시 "삽"에는 경이가 잇다 나도 삽을 발음해 본다

입술이 모시조개처럼 예쁘게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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