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님의 침묵 / 한용운

주선화 2008. 1. 24. 12:40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헤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끝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 키쓰 " 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 움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 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1926>

 

 

* 한용운 시인은 식민지 시대를 살다 간 혁명가요, 시인이요, 수행자였다

님의 침묵은 유일한 시집 표제시이자 서시이다

이 시는 님과의 이별과 이별의 슬픔을 재회로 역동적으로 바꿔놓는다

이런 극적 구성은 불교특유의 유심적 상상력 때문에 가능햇을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돌이키는 것으로 만해는 있음과 없음, 좋음과 그렇지 못한 것,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만남과 이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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