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허공에 거주하고 싶은 / 이주언

주선화 2010. 1. 7. 13:37

허공에 거주하고 싶은 / 이주언

 

 

삶은 기저귀가 옥상에서 펄럭인다

 

햇빛 올올이 박혀서 눈부신 기저귀

백자 물병을 허리에 차고 고비 사막을 달리는 듯하다

 

민들레꽃 같은 아기의 똥을 받아내거나

달거리 소녀의 하혈로 젖던 불온함

혹은, 누운 노인이 한 생의 후회와 절망을 쏟던

 

옥양목 기저귀 몇 장

저리 환한 얼굴로 너울거린다

 

습한 동굴 속에서 구겨졌던

기어코 어두운 삶을 경뎌온 것들이 하얗게 웃고 있다

 

누군가의 배설을 끌어안아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개를 틔우는

제 속의 감옥을 허공에 매다는 일은 저렇게 눈이 부시다

 

깜깜한 터널을 다 빠져나오면 또 다른 동굴이 기다리고 있는

기저귀 인생일지라도

 

가끔 제 누추를 삶아 펼칠 수 있다면,

가끔 모든 걸 떨치고 허공에 잠시 거주할 수 있다면, 하고 여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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