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사냥꾼의 노래 / 문정희

주선화 2011. 3. 4. 12:14

사냥꾼의 노래 / 문정희

 

 

여름과 가을 사이 발걸음 소리를 작게 하리라

성찰과 냉정을 두둔하고 밥을 적게 먹으리라

뿔 하나를 머리칼 속에 숨기리라

 

철새 한 마리 심장으로 날아들면

보랏빛 꽃을 들고 반기리라

별과 조개껍질과 짐승 뼈의 기억을 가진

미이라 따위를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보리라

늙은 사냥꾼처럼 명민해지리라

우연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냥꾼은 없다는 말을

곰곰이 새겨보리라

 

여름과 가을 사이 더 이상 꽃들은 예쁘지 않고

마지막 힘으로 지붕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면

다시 한 번 젖은 입술로 허공을 노래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