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자들의 눈을 보았는가 / 금시아
꽃한송이 없는 누런 상여들이 느린 걸음으로 능선을 오른다
얼어붙은 햇살의 속울음이 길게 줄을 잇고
이곳저곳에서 나선 만장의 대열은 그저 커다란 눈만 껌벅거릴 뿐
적막이 느리게 느리게 뒤를 따른다
작은 모습으로 시작한 폭군의 바이러스는 거대했다
폭군이 서슬 퍼런 얼음의 날을 세울수록 파문은 빨랐다
소리없는 쇠나팔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메아리쳤고
메아리에 마비된 것처럼 소들은 무작정 묵묵히 폭군을 따랐다
그 옛날 왕의 출상 길을 따르던 순장자들처럼
자원도 징발도 아닌 젖은 눈망울은 무섭고 깊었다
아직 봄이 먼 언 땅에 몸을 누이는 그들 위에서 비릿한 향기가
훅,
돌뚜껑 같은 하루하루가 구덩이를 덮고 또 덮고 ....
폭군의 얼음칼이 천적인 햇살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
길고 긴 비릿한 날들이었다
봄의 기척에 전쟁은 끝났다
순장길에 올랐던 소들의 무덤들은 벌써 겨울을 잊는다
그세 무덤 위에는 무심한 새 풀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누구도 일부러 기억을 회피하고 봄은 오고
화농진 흙더미만 더 붉어지고 있을 뿐이다
먹먹한 겨울이 뒤에서 그 큰 눈을 껌벅, 껌뻑거릴 뿐이다
항구의 커피는 바다 향기가 난다 / 우경화
낯선 얼굴 수상쩍다는 듯
옷자락 슬며시 들추어보는
엉큼한 바람의 손길이 능글맞다
이곳 지리에 익숙한 그가 안내하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방파제를 걷는다
성가시게 짤랄대는 동전과?맞바꾼
뜨끈한 종이컵 입술에 갖다 대며
오랜만에 실성한 여자처럼 중얼거린다
마음 비운다는 게 뭐 별건가
지친 고개 끄덕거리며 졸고 있는
날품팔이보다 남루한 정자한 어선들
아무나 집적대는 건달 같은
바람의 발길에 툭툭 차여 선잠 깬다
먼 바다로 떠날 채비 서두르듯
살아보겠다는 몸짓들로 부산한 정자항
미끈한 모텔들 입술 붉은 여자인 냥
늘어서서 유혹하는 반대편
낮고 축축한 길을 골라 걷는다
진솔한 삶이란 알고 보면
춥고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법
썰렁한 정자동 어민 휴게소
깨진 유리창 안쪽 동정을 샆피던 바람
슬쩍 다가와 부둣가로?어깨 잡아끈다
좌판 위?등 부비고 누운 과메기들
까닭 없이 어깃장 놓고 싶은 심사
후끈하게 풀어주겠다는 듯
석쇠 위로 올라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저녁,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한때의 추억을 굽는 젊은 연인들
헐값의 낭만이 오늘따라 부러운지
껄렁한 바람도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는
항구의 커피는 바다 향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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