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구 / 박은영
나는 삽 한 자루를 가지고 부화했다
땅을 팔 때마다 부하게 일어나는 흙먼지
배냇짓을 잊어버리고 땅파기에 열중한다
밤늦도록 땅을 파며 놀던 나의 멱살을 쥔 아버지처럼
손아귀 힘이 강해진다 파도 파도 배고픈 날들
밥그릇 수만큼 삽은 커다래지고
손톱은 딱딱해져 삽날에 찍혀도 흠집이 나지 않는다
비이이- 구덩이로 고여 드는 울음,
물기 많은 한숨이 원을 그리며 퍼진다
한 삽 한 삽 퍼 올린 흙더미에 아내가 딸려오고
부화한 새끼들이 배고픈 줄도 모른 채
흙가루를 날리며 웃어댄다
움켜쥐는 법을 터득한 후 빨라진 삽질의 속도,
밥그릇이 쇳소리를 내며 바닥을 드러낸다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산자락
수평선 안쪽으로 각혈처럼 노을이 번진다
세상이 한 삽 가득 어둠을 떠먹는 시간
갈기를 세운 사자자리별똥별에 어깨는 움츠려들고
삽자루를 쥔 흙투성이 손은 굳어 펴지질 않는다
이제 삽을 내려놓아야 할 때
한평생 파놓은 깊고 어두운 구덩이
겨우, 내 한 몸 뉠 자리다
* 땅강아지 혹은 땅개, 땅개비라고 불리는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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