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과 놀기 / 신용묵
어느 맥없는 손이
가까스로 널어놓고 간
아무도 걷어가지 않는
저 허공에 진 주름만큼
고개를 끄덕이는, 갈대꽃
낙엽
바람이 피 흘리고 간 자리마다 낙엽
떨어져 있다 그 살점들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처가 덧나는 곳에 노인이 앉아 있다
온몸에 흉터를 달고 저렇게 잠들 수 있다니!
여기서 머물면
자주 얇아지는 버릇도 병이 되어 바싹,
마른 소리를 내며 쓸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노인은 잠들어
바람에게 체온을 나누어준다
상처가 빨갛게 말라 바람의 이빨이 환하다
그 마지막 공양으로
오늘도 눈 내리지 않으리
노인이 안고 잠든 지팡이가 앞맥처럼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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