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여자
- 김인육
이상한 여자가 죽었다
이 세상 나를 가장 사랑했던 여자
저보다 나를 더 사랑했던 여자
이해할 수 없는 여자
그 여자, 이 별을 떠났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 여자를 조금은 사랑했었다
내 마음 바쳐 사랑한 여자는
젊은 딴 여자였지만
그런 나를 아껴 사랑했던 여자
이상한 여자
그 여자, 이 별을 떠나며
비밀히 품었던 서간 하나 있었지
70년 넘게 장롱 깊숙이 간직했던 혼서지
그 여자, 그게 있어야 먼저 떠난 사내
저 아득한 밤하늘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제 관속에 꼭 넣어 달라 신신당부했던
이상한 여자
그 여자
그 사내보다 날 더 사랑한다고
날마다 내게 고백하곤 했었지
이제 그 예장지 가슴에 품고
활활 관 속에서 불타며
그 사내에게로 떠나며
끝까지 나를 울던 여자
이상한 여자
그 여자
저 아득한 별나라 그 사내 다시 만나
기어이 나를 다시 잉태하려는 여자
나를 죽도록 사랑했던 여자
죽어서도 나를 사랑하는 여자
독종의 여자, 불멸의 여자
두고두고 내 심장 아리는
눈물의 여자
참 이상한 여자
'마음에 드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룩말 감정 / 최문자 (0) | 2019.11.12 |
---|---|
나뭇잎은 칸칸이 떨어집니다 / 신용목 (0) | 2019.10.02 |
흙이 되는 순간 / 김관용 (0) | 2019.06.10 |
배다 / 고성만 (0) | 2019.05.29 |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 주다 / 울라브 하우게 (0) | 201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