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여자
ㅡ 최정례
한때 아기였기 때문에 그녀는 늙었다
한때 종달새였고 풀잎이었기에
그녀는 이가 빠졌다
한때 연애를 하고
배꽃처럼 웃었기 때문에
더듬거리는
늙은 여자가 되었다
무너지는 지팡이가 되어
손을 덜덜 떨기 때문에
그녀는 한때 소녀였다
채송화처럼 종달새처럼
속삭였었다
쭈그렁 바가지
몇가닥 남은 허연 머리카락은
그래서 잊지 못한다
거기 놓였던 빨강 모자를
늑대를
뱃속에 쑤셔 넣은 돌멩이들을
그녀는 지독하게 목이 마르다
우물 바닥에 한없이 가라앉는다
일어설 수가 없다 사진 (최민식)사진작가
한때 배꽃이었고 종달새였다가 풀잎이었기에
그녀는 이제 늙은 여자다
징그러운
추악하기에 아름다운
늙은 주머니다
붉은 밭
ㅡ 최정례
깜빡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푸른 골짜기
사이 붉은 밭 보았습니다 고랑 따라 부드럽게 구불거리고 있었
습니다 이상하게 풀 한 포기 없었습니다 그리곤 사라졌습니다
잠깐 이었습니다 거길 지날 때마다 유심히 살폈는데 그 밭 다
시 볼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내 교과서를 아
궁이에 쳐넣었습니다 학교 같은 건 다녀 뭐 하냐고 했습니다 나
는 아궁이를 뒤져 가장자리가 검게 구불거리는 책을 싸들고 한
학기 동안 학교에 다녔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릅니다
타다 만 책가방 그후 어찌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밭 왜
풀 한 포기 내밀지 않기로 작정해쓴지 그러다가 어디로 사라졌는
지 알 수 없습니다 가끔 한밤중에 깨어보면 내가 붉은 밭에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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