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감상 / 박소란 평설 / 박남희

주선화 2021. 11. 9. 12:07

감상

 

ㅡ 박소란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돌진하였네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나는 조용히 나동그라지고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비질을 하였네 아무렇게나 구겨진 과자봉지처럼

내 모두가 쓸려갈 것 같았네

그러나 어디로도 나는 가지 못했네

 

골목에는 금세 굳고 짙은 어스름이 내려앉아

 

리코더를 부는 한 사람이 있었네

가파른 계단에 앉아 그 소리를 오래 들었네

뜻 없는 선율이 푸수수 귓가에 공연한 파문을 일으킬 때

 

슬픔이 왔네

실수라는 듯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곁을 파고들었네 새하얀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잠시 울기도 하였네

 

슬픔은 돌아가지 않았네

 

얼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는, 그 시무룩한 얼굴을 데리고서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쾅쾅 두드렸네

 

 

 

평설

 

ㅡ박남희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서정성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에 박소란 시인의 시는 드물게도 개성적인 어법으로 독자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던져준다. 2020년 노작문학상을 받은 그의 두 번째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 의 표제 시인 「감상」은 자신을 향해 끝없이 문을 두드리는 자들의 손짓보다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스스로 유폐되어 있는 '한 사람의 딛힌 문'에 다가가서 문을 두드리는 화자의 따뜻한 마음의 움직임과 결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시에는 네 명의 '한 사람'이 등장한다. 첫 번 째 '한 사람'은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나를 향해 돌진하는"하는 한 삶이다. 이런 사람은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나에게 어딘가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두 번째 '한 사람'은 "아무렇게나 구겨진 과자봉지처럼/ 내 모두가 쓸려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주도적으로 나를 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화자는 이 두 사람 중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어느새 골목에는 짙은 어둠이 깔리고 리코더를 부는 '한 사람'이 나타난다. 화자는 "가파른 계단에 앉아 그 소리를 오래 들"으면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일고 슬픔을 느끼게 된다. 리코더를 부는 한 사람의 얼굴은 어느새 슬픔이라는 존재의 얼굴을 하고 화자는 끝내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앞의 두 명의 '한 사람'처럼 저돌적이지 않고 "실수라는 두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곁을 파고 들"어 "새하얀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잠시 울기도 한다." 화자는 얼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시무룩한 슬픔을 데리고 네 번째 '한 사람'의 닫힌 문을 꽝꽝 두드린다. 네 번째 '한 사람'은 앞의 세 '한 사람'과는 다르게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고 닫힌 문 속에 유폐되어 있는 한 사람이다. 일종의 사회적 약자인 셈이다. 이러한 모습은 사회적 약자와 시대적 아픔을 적극적으로 끌어 안아온 박소란 시인의 그동안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타자의 슬픔에 공감하고 그 슬픔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내용에 비추어보면 이 시의 제목인 '감상'은 '感像', 즉 사물에 대해 느낀 바가 있어 마음 속으로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마음으로서의 감상일 것이다. 박소란 시인처럼 개성적인 목소리로 서정적 울림을 깊이 있게 전달해주는 시인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코로나 19로 모두가 힘든 시대에 이런 시인의 시를 곁에서 깊이 감상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