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산 돼지고기와 나와 이승훈 시인
ㅡ류흔
멕시코산 돼지고기를 샀다
멕시코산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앞에 놓고 보니 마블링과 함께
감회가 잘 깃들어있다
멕시코에서 예까지, 그러니까 멕시코에서 나의 눈앞에
딱 등장한 멕시코산 돼지고기에 대해
나는 잠시 경외감을 가진다
멕시칸치킨만 먹어본 나로서는
정말 영광이다
찾아보니 여기서 멕시코까지
시차는 열다섯 시간
(멕시코시티는 오늘이 어제였다)
뱅기로는 사십 시간 남짓
참 멀다, 그렇다면
이 고기가 정녕 멕시코산은 맞는 것일까
설마 중국산은 아닐 테지, 구워서
먹어보면 안다
멕시코산 돼지고기 목살을 씹으며
故 이승훈 시인 1주기 추모 시집을 읽는다
그렇다면 지금 내 목살을 통과 중인
이 멕시코산 돼지고기 목살도 은연중에
시를 읽고 있으니
멕시코산 돼지고기 목살도 독자 내지는
시인 아닌가?
이 멕시코산 돼지고기가 포스트모던이라든가
사물A, 혹은 아방가르드를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아무튼 나는 모자를 벗어
그에게 예를 표하고 싶다
또한 나는 나의 목살이라도 잘라
이승훈 선생님 영전에 놓고 싶다
아무도 모르게 멕시코에 가서 으앙
으앙 울고 싶다
염소 구경
내 관심법에 걸린 염소가
뿔을 저으며 나무를 돌고 있다
저렇게 돌다가는 스스로 돌아버릴 게 뻔하다
줄이 밑동을 친친 감는다
나무가 걷지 못하다
불경하지만 수염을 잡아 遠으로 돌리고 싶다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우뚝 멈춰선 염소가 나를 노려본다
그것은 기쁨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꽝
대문 박차듯 열어둔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의외로 절실하다
생각건대 그것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임이
자명하다
부탁이지만 재난지원금처럼 정부가 나서서
그것을 좀 나눠주면
고맙겠다
그것에 관한 한
나는 용빼는 재주가 없다
나이 들며 빠르게 쪼그라들고
그럴수록 애인들은 보챈다
그들의 행복지수를 생각
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진다
집을 팔았고
나는 맥주를 산다
그러나 시는 팔리지 않고
가난한 애인이 닦달한다
나는 애인들에게 팁을 줄 수 없으니
거친 그들을
한시바삐 해산 시켜야 하리
대단히 고약한 결정이었으나 육탄
결사대 명단을 들고 나타난 사령관처럼
나는 대문 앞에 선다
이런 일이 벌어져 몹시 유감이지만
그것을 형성하기 위해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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