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죄송합니다, 올해는 휴업합니다 / 장정욱

주선화 2022. 3. 11. 10:30

죄송합니다, 올해는 휴업합니다

 

ㅡ장정욱

 

 

갑작스러운 농담 앞에 나는 멈춰 섰다

얼굴색이 변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해를 꼬박 문을 닫는다니, 지금 막 도착한 장마는 어쩌라고

 

닫힌 여름은 뜯지 않은 편지와 초록 넝쿨로 얼기설기 뒤덮여 있다

수돗가엔 쓰다만 면도칼과 세숫대야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우리 일 년만 헤어져 있자

 

날씨 없는 날씨가 구름처럼 깨졌다

 

빗방울이 텅텅 비었다

개집이 텅텅 비었다

 

어떤 날짜 속에 우리들의 기일은 들어갔을까

 

주소 옆 우편함

부서진 밀물과 썰물의 내용이 낡은 소설처럼 멀다

 

헛걸음일지라도 빗소리는 빗소리대로 눈송이는 눈송이대로 한 번쯤 다녀갈 것이고, 모란은 서러운 홑겹이라도 피워낼 것이다

 

비집고 흘러나온 달빛에게 말한다 할 수 없잖아요, 올해는 쉴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