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올해는 휴업합니다
ㅡ장정욱
갑작스러운 농담 앞에 나는 멈춰 섰다
얼굴색이 변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해를 꼬박 문을 닫는다니, 지금 막 도착한 장마는 어쩌라고
닫힌 여름은 뜯지 않은 편지와 초록 넝쿨로 얼기설기 뒤덮여 있다
수돗가엔 쓰다만 면도칼과 세숫대야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우리 일 년만 헤어져 있자
날씨 없는 날씨가 구름처럼 깨졌다
빗방울이 텅텅 비었다
개집이 텅텅 비었다
어떤 날짜 속에 우리들의 기일은 들어갔을까
주소 옆 우편함
부서진 밀물과 썰물의 내용이 낡은 소설처럼 멀다
헛걸음일지라도 빗소리는 빗소리대로 눈송이는 눈송이대로 한 번쯤 다녀갈 것이고, 모란은 서러운 홑겹이라도 피워낼 것이다
비집고 흘러나온 달빛에게 말한다 할 수 없잖아요, 올해는 쉴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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