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앵무새
ㅡ임경묵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노랑뺨초록앵무, 붉은귀앵무, 풀빛허리앵무, 푸른부채꼬리앵무,
검은부리오색앵무, 레인보우앵무, 잿빛목도리앵무, 청머리붉은날개앵무,
긴꼬리파랑가슴앵무도 있습니다만 ...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검은 앵무새의 섬에 가려면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바다
날씨라는 게 워낙 종잡을 수가 없어서요. 무엇보다 꼼꼼히 바다를 저
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만나려면 손으로 노 젓는 사람 배를 타야 합니다.
발로 노 젓는 사람은 적도의 상어에게 두 팔을 주고부터 검은 앵무새가
그의 어깨에 앉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구요.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발로 노 젓는 사람과 손으로 노 젓는 사람은 은폐술이 뛰어나
평소에는 보일 듯 보이지 않죠. 손으로 노 젓는 사람만이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부를 수 있습니다.
당신은 검은 앵무새입니까?
* 인도양 세이셸 군도의 프랄린(praslin island)에 검은 앵무새의 서식지가 있다
푸드트럭
사내는 꽤 점잖은 편이다
매직펜으로 반듯하게 쓴 <토스트+우유=2500> 피켓을 들고
트럭 옆에서
지나는 차들을 향해 공손하게 서 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자가
트럭 안에서 식빵을 굽는다
외곽에 딸린 변전소 앞길은
공단 가는 지름길,
키다리 송전탑들이 고압적인 자세로
이곳을 지나는 차들과
전봇대에 대충 기댄 푸드 트럭을 내려다보고 있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사내는 왼손엔 피켓을
오른손엔 우산을 들고
식빵을 굽는 여자 옆에서 다시 마네킹처럼 서 있다
팬에 노릇노릇 구워진 식빵을 뒤집으며
여자는 가끔
목을 길게 빼고 도로를 내다본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밀린 주문은 없다.
꽃피는 스티로폼
봄바람은 불고
벚꽃은 흩날리고
스티로폼 조각은 골목을 굴러간다
피자 배달 오토바이가
스티로폼 조각을 툭 치고
골목 속으로 사라진다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한 귀퉁이가
골목을 굴러간다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조각도
핑그르르 돌다가
다시 골목을 굴러간다
피자 배달을 마치고 골목을 나오던 오토바이가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조각을
정면으로 밟고 지나간다
스티로폼이 파삭 부서진다
그 속에서
스티로폼 흰 알갱이들이 무수히 태어난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오토바이 뒤를
좋다고 따라가는
흰 알갱이들...
봄바람은 불고
벚꽃은 흩날리고
스티로폼 흰 알갱이들이
일제히 과속방지턱을 뛰어넘어
골목 밖으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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