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컬
-전영관
당신의 포옹은 어색해
그 안부는 등받이 없는 의자 같아서
안온함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아무나 표절해도 되는 꽃말은
꽃을 선물해놓고 얼버부리는 핑게 같은 것
애인 앞에서의 눈물도
깨진 사랑을 수리해주는 천사의 접착제일 뿐
천 개의 퍼즐을 맞추는 일보다
그림 하나를 천 개로 나눈 사람이 대단해
운동화 끝이 자주 풀리는 것은
묶느라 구부리는 사이
내 안에 고인 것들이 흘러나가게 하라는
어린 귀신의 배려겠지
내일 당장의 일이면 불면으로 경고하는데
먼먼 일이라면 타인의 것인 양 잊어버리게 하는
신은 근시임에 틀림없어
내게 없다는 그 철학은
어른과 아이의 생각 차이를 화해시키는 일
감상
-김정수(시인)
.....
어려운 시를 읽다 보면 그림 퍼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어와 문장, 행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숨겨놓고, 그
것도 모자라 뒤죽박죽 순서를 바꿔놓고는 '내가 말하고 싶은 의미가 무언지 찾아보라' 한다. 그러고는 뒤에 슬쩍 물러나
시니컬하게 바라본다. 각기 제자리가 있지만 "천 개로 나눈" 그림 퍼즐은 쉽게 맞출 수 없다. 처음엔 난감하고 막막하지
만 모서리에서 가운데로, 같은 색상끼리 퍼즐 조각을 맞추다 보면 서서히 그림의 윤곽이 드러난다.
시인이 풀어헤친 그림에는 당신과의 어색한 포옹과 편안한 의자가 돼주지 못한 자책과 살면서 위태로왔던 순간과 아
이를 낳아 기르며 겪은 애환이 들어 있다. 그런 일들은 당장 해결할 수 없으므로 타인의 일인 양 잊고 살아야 한다. 아이
가 신발 끈을 처음 묶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지만, 어른이 돼서도 "운동화 끈이 자주 풀리는" 건 몸과 마음
상태가 아이 같다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 그 차이를 좁혀주는 삶의 퍼즐 조각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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