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귤은 겁질까지 둥글고 / 임재정 감상 / 김정수(시인)

주선화 2023. 2. 27. 13:08

귤은 껍질까지 둥글고

 

-임재정

 

 

아이 두엇 물어 오느라 잇몸에 그믐을 들인 여자가

몸 일으키며 가랑잎처럼

웃는 병상에

 

엉덩이 디밀고 앉아

나는 봉지 귤을 까고

 

봉변에 놀란 도마뱀 꼬리처럼 툭 툭 끊기는 말들

 

 

가늘게 떨리는 손바닥에

노랗게 가른 귤 조각이나 건넨다

시린 일이 귀밑머리에 쌓였는지 간밤의 잔설들

 

암은, 아무렴

 

귤은 껍질만으로도 여전히 향기롭고 둥글더라, 끄덕이면

마주 끄덕이는 누이

 

부끄러이 더덕꽃 낯으로 그늘진

앞섶

 

아이 셔, 나는 돌아앉아 흐렸다

 

 

 

감상

 

-김정수(시인)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자리는 자연스레 피하게 되지만, 꼭 가봐야만 하는 자리도 있다.

가까운 사람의 병문안도 그중 하나다. 시인은 귤 한 봉지 사 들고 누이가 입원한 병원을

찾는다. 병실에 들어서자 아이 둘의 엄마인 누이가 가랑잎 같은 몸을 일으켜 웃으며 맞

아준다. "좀 어때?" "괜찮아"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받은 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슬쩍 침상에 걸터앉은 시인은 귤을 까서 누이의 손에 올려 준다. 병색이 완연한 누이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잇몸의 그믐'은 누이의 건강 상태나 삶이 평탄치 않음을 뜻한다. "암은, 아무렴" 이란

말에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병을 낫게 해달라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 피붙이와 만남인

데도 말이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긴다. "귤은 껍질만으로도 여전히 향기롭고 둥글더라"

는 서먹한 말에 서로 고개만 끄덕인다. 누이의 눈과 마주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돌

아앉는다. "아이 셔" 이 한마디에는 귤의 신맛과 '아이'들 걱정이 스며 있다. 시인은 시어

하나에도 의미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