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모르는 사이 / 박소란

주선화 2023. 2. 2. 12:09

모르는 사이

 

-박소란

 

 

  당신은 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이어폰을 꽂은 채 줄곤 어슴푸레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

군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태운 7019변 버스는 이제 막 시립은평병원을 지

났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우리는 나란히 앉아 왔지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눈을 준 이 저녁이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건물마다 스민 그 빛을 덩달아 환해진 당신의 뒤통수를

몰래 훔쳐봅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입니까 당신은

 

  오늘 낮에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

한 광장을 혼자 걸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곳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적이 있지

요 밥이나 한번 먹자 악수를 나누고서 황급히 돌어선 적

이 있지요

 

  나는 슬퍼집니다 

  그렇고 그런 약속처럼 당신은 벨을 누르고 버스는 곧 멈

출 테지요

  나는 다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이 도시와 도시를 둘러싼 휘휘한 공기에 대해 당신

무릎 위 귀퉁이가 해진 서류가방과 손끝에 묻은 검뿌연 볼

펜자국에 대해

 

  당신은 이어폰을 재차 매만집니다

  어떤 노래를 듣고 있습니까 당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그 노래를 나도 좋아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문이 열립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당신이 유유히 문을

나섭니다 당신의 구부정한 등이 저녁의 미지 속으로 쓸려

갑니다

 

  우리는 헤어집니다 단 한번 만난 적도 없이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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