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백일홍 편지 / 배재경

주선화 2023. 6. 23. 09:45

백일홍 편지

 

-배재경

 

 

  어머니는 분분한 사월 85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환갑을 넘긴

외사촌 형은 고모! 고모!를 부르며 꺼이꺼이 슬프게 운다 아들인 나보

다 더 섧게 울어 내가 무안할 정도다 삼일장 봉분을 쌓고자 연분홍 벚

꽃 잎이 우수수 날리는도로를 달려 고향 뒷산, 아부지 옆으로 모셔졌

고, 외사촌형은 어느 사이 준비했는지 백일홍 두 그루를 봉분 앞 좌우

에 심었다 우리 ~ 고모~ 좋아 ~ 하는~ 꽃 ~ 인데, 엉엉! 곡을 하며 백

일홍을 심는다 우리 가족사를 모르는 분들이라면 외사촌 형이 부모상

을 당한 자식 같다 나는 왜 눈물이 안 나는 것일까, 사촌 형의 곡소리

가 높으면 높을수록 나는 형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기 바빴다 상주가

뒤바뀐 듯 하다 그런 사촌 형은 이태 뒤 홀연히 어머니를 보러 떠났다.

형이 음주를 한 건지는 알지 못했고 10여년 한몸으로 살아온 1톤 트

럭은 부서진 몸 안에 형을 가두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을 망가뜨린

주인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앙다문 포터의 문짝을 떼어내느라 긴급출

동요원들이 애를 먹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어머니 묘의 왼편 백일홍이

서서히 말라가더니 1년 만에 형을 따라갔다 나는 쓸모없어진 그 백일

홍 뼈대를 낫으로 쳐내며 못된 놈이라 뱉어주었고 오른쪽 백일홍은

무성히 가지를 펴고 뜨건 햇살에 가슴 활짝 열고는 복슬복슬 꽃을 화

려하게 피워댔다 땀을 삐질삐질 쏟아내며 이른 벌초를 하다 보면 붉은

백일홍이 자꾸 엄마 웃음처럼 비치는데, 아 이거 환장하겄네 마치 엄

마가 화사히 한복을 입고 마실 나가는 듯 서서 나를 보는 듯하다 사촌

형이 자기 고모를 위해 심은 건지, 나를 위해 심은 건지는 아직도 오리

무중이지만,

 

 

 

 

 

 

 

 

 

'마음에 드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막 거북 / 정끝별  (0) 2023.06.28
산책자 보고서 / 신용목  (0) 2023.06.26
모래는 뭐래 / 정끝별  (0) 2023.06.19
날라리 진혼곡 / 신미균  (0) 2023.06.09
나의 양떼들 / 신달자  (0) 2023.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