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사과의 잠 / 김정수

주선화 2023. 7. 15. 09:19

사과의 잠

 

-김정수

 

 

사과를 벗기자 안에 낮달이 들어 있었다

 

노독이 덜 풀린 엄마를 깨우니

그만 길이 어두워졌다 칼의

심장을 기억하는 치욕이 뚝 끊어졌다

 

단칼에 자르기도 하고

서서히

목을 겨누기도 하는

 

경각에 달린 행로를 벗어나자 자정이었다

 

아무도 모를 거라는 위안에

몸의 중심이 다소 흔들렸다

 

사소한 다툼이 반으로 쪼개져 매장되었다

몰래, 죽은 엄마를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외출하기도 전에 벌레 먹은 죽음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불온을 찌르자

불결이 먼저 와 잠들어 있었다

 

오르지 못해도 오른 것이고

왔다 갔다는 믿음도 사라졌다

 

무딘 칼등으로 

사과의 잠을 두드려

벌레 같은 날들을 깨웠다

 

무덤을 벗겨 낸 껍질이

평상에 수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