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수령하다
-김성희
읽을 수 없는 글자를 꽃으로 읽습니다
피울 수 없는 꽃을 활자로 읽습니다
보낸 적 없다는 어둠을 택배로 받습니다
세상은 온통 불통의 책
언어를 갈망하는 새 울음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아갈 때
두근두근 앞 문장을 뒷받침해 주지 못한 연둣빛이
봄을 추락시킵니다
누구를 위해 피는 꽃도 아닌데
맥락 없이 나를 위해 읽어버린 빛깔이 분분합니다
세상은 온통 불안의 책*
서로를 스캔해도 완벽한 타인이고
집요한 일상은 이데아에 가깝습니다
지금 여기를 수령하면 안개 너머의 그림자가
꽃으로 몰려드는 아침입니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책
슈가 파우더
혀를 깨물고 죽으려다
혀가 맛이 없어 도넛을 깨물었다네요
기름진 혀끝으로 달콤하게 죽을 수 있다는 농담
그 농담에 슈가 파우더를 뿌리면 새하얀 거짓말이 된다네요
도넛을 깨물었는데
마음 한가운데가 뻥 뚫려서
둥글둥글 살 수도 있다네요
수요일엔 빨간 장미보다 도넛
한 상자를 사면 한 상자를 더 주는 행운이 있다네요
슈가 파우더같이 한마디 흩뿌리자면
달콤함이 투머치하면 비현실이 될까 봐
아메리카노를 곁들인답니다
달콤 쌉쓰레한 인생의 맛을 즐기고
기름진 타인의 맛은 절제하면
버블버블 더블더블 원더플한 삶이
사계절 내내 유리 진열대에 전시 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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