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꽃을 수령하다(외 1편) / 김성희

주선화 2023. 9. 17. 10:23

꽃을 수령하다

 

-김성희

 

 

읽을 수 없는 글자를 꽃으로 읽습니다

피울 수 없는 꽃을 활자로 읽습니다

보낸 적 없다는 어둠을 택배로 받습니다

 

세상은 온통 불통의 책

언어를 갈망하는 새 울음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아갈 때

두근두근 앞 문장을 뒷받침해 주지 못한 연둣빛이

봄을 추락시킵니다

 

누구를 위해 피는 꽃도 아닌데

맥락 없이 나를 위해 읽어버린 빛깔이 분분합니다

 

세상은 온통 불안의 책*

서로를 스캔해도 완벽한 타인이고

집요한 일상은 이데아에 가깝습니다

지금 여기를 수령하면 안개 너머의 그림자가

꽃으로 몰려드는 아침입니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책

 

 

 

슈가 파우더

 

 

혀를 깨물고 죽으려다

혀가 맛이 없어 도넛을 깨물었다네요

기름진 혀끝으로 달콤하게 죽을 수 있다는 농담

그 농담에 슈가 파우더를 뿌리면 새하얀 거짓말이 된다네요

 

도넛을 깨물었는데

마음 한가운데가 뻥 뚫려서

둥글둥글 살 수도 있다네요

수요일엔 빨간 장미보다 도넛

한 상자를 사면 한 상자를 더 주는 행운이 있다네요

 

슈가 파우더같이 한마디 흩뿌리자면

달콤함이 투머치하면 비현실이 될까 봐

아메리카노를 곁들인답니다

달콤 쌉쓰레한 인생의 맛을 즐기고

기름진 타인의 맛은 절제하면

버블버블 더블더블 원더플한 삶이

사계절 내내 유리 진열대에 전시 된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