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주선화 2024. 1. 3. 09:46

왼편

 

-한백양

 

 

집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다

오랫동안 빌라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이 한 번씩 크게 싸우곤 한다

 

너는 왜 그래 나는 그래 오가는

말의 흔들림이 현관에 쌓일 때마다

나는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

그 가족들을 왼손처럼 서투른 것으로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집의 왼편에 있는 모든 빌라가

늙은 새처럼 지지배배 떠들면서도

일제히 내 왼편 빌라의 편이 되는

어떤 날고 어떤 밤이 많다는 것

 

내 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직 잠들어 있을 내 편을 생각한다

같은 무게의 불면증을 짊어진 그가

내 가족이고 가끔 소고기를 사준다면

나는 그가 보여준 노력의 편이 되겠지

 

그러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고

오른편에는 오래된 미래가 있으므로

나는 한 번씩 그렇지, 하면서 끄덕인다

 

부서진 화분에 테이프를 발라두었다고

다시 한번 싸우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하고 뭉그러진 바람이 밀려든다

밥을 종종 주었던 길고양이가 가끔

빌라에서 밥을 얻어먹는 건 다행이다

 

고양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제 편이 되어줄 사람들은 싸운 후에도

편이 되어주는 걸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