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주선화 2024. 1. 3. 15:38

웰빙

 

-한백양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그러나 이미 앉은 사람을

박대할 수 없으니까

한동안 복숭아는 포기할 것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누구에게 잘하진 못한다

 

나는 요즘 희망을 앓는다

 

내일은 국물 요리를 먹을 거고

배가 출렁일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을 거고

 

옷을 사러 갔다가

 

옷도 나도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잔뜩 칭찬을 듣는 것

 

가끔은 진짜로

진짜 칭찬을 듣고 싶다

 

횡단보도 앞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쉴 새 없이 말을 속삭일 때마다

내 어깨는 더욱 비좁아져서

 

부모가 종종 전화를 한다 밥 먹었냐고

 

밥 먹은 나를 재촉하는 부모에게

부모 없이도 행복하다는 걸 설명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