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 / 김은닢

주선화 2024. 1. 9. 13:50

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 (2022년 시인수첩 신인상 당선작 )

 

-김은닢

 

 

  소녀가 파랗게 질렸다 거인이 소녀의 목

소리를 삼켰다 풀어헤친 머리칼이 작은

얼굴을 휘감는다 훌쩍이는 말들 검은 씨

앗으로 심장에 박혔다

 

  밤마다 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

귀에 태엽을 감고 살바람과 들판을 달렸

다 오르골처럼 바람은 소리를 남기고 떠

났다

 

  넝쿨 숲을 열면 어떤 악몽이 튀어나올까

 

  거인이 소녀의 발꿈치를 깎아서 신발을

신겼다 다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내가

네 엄마란다, 무덤가 개암나무가 아무도

모르게 붉은 꽃을 피웠다

 

  소녀의 옆구리에 이파리가 돋는다 발바닥

에 잔뿌리가 내린다 종아리와 팔뚝이 터지

고 갈라지며 두터운 껍질로 뒤덮었다 가는

우듬지 열어 소녀가 개암나무를 불렀다

 

  내 목소리가 잎 속에서 자라고 있어

 

  손을 뻗으면 공중에서 일렁이는 귀들, 푸드

득 새들이 나무에게로 쏟아진다 나무의 방에

불이 켜지면 나이테에 감긴 음악이 흘러나올

거야 나무는 소리를 찾는 여행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