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
-박은형
담장에 장미 넝쿨을 올려두고
나무의자 두 개
빨래집게가 물고 있는 공중을 보고 있다
곧 헐린다는 집들
목서 따위 나무의 이름과
낮달을 보여주는 비범한 골목까지
지키는 것인지
고여 있는 것인지
나날이 마르는 내 영혼에 비할 바 아니지만
그 무엇도 데려와 앉히지 못하는,
나무의자 두 개
담장이 좋지 않을까 아니야
장미 가시가 될 수 없다면 펄럭이는 공중으로 정할래
폐허로 낙인찍힌 빈집들 사이 서성이며
한 번쯤 있을지도 모를 후생을 골라 보는데
꾸무럭 까만 눈알을 뜨는 나무의자 두 개
폐허의 옆구리 냄새를 컹, 짖을 때는
다 늙어빠진 개의 앞발에 얹히는 저녁처럼 다정하다
홀로 비 맞다 썩을 즈음이면
삽목한 가지처럼 다시 땅 깊은 데까지 발을 뻗어가
저녁에만 몰래 자라는 나무로 되돌아갈 수도 있을 거야
한 그루 생이 비워진 나무의자를 따라 하다
무채색의 긴 그림자만 묻힌 채 나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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